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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의 종소리
사랑의 종소리를 한동의 종소리로 개사해 부르다
기사입력  2016/05/21 [07:52] 최종편집    크리스천비전

 

▲전 한동대학교 총장 김영길 박사.     © 크리스천비전

 

   내가 죄수의 몸으로 결박당해 보니 예수님이 겪으셔야 했던 고통의 무게가 내 가슴을 찔렀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죄인인 나의 죗값을 대신 치르시기 위해 사람으로 오셔서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채찍에 맞으시며 조롱과 멸시로 십자가를 지셨구나!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인 인간에게 가해를 당하셨구나!  그런데 진짜 죄인인 나는 편안하게 버스를 타고 가고 있다니…

  

   독생자를 보내셔서 죄인인 나를 위해 죽게 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감사해서 울었고 죄송해서 울었다.  나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을 입은 존재다.  나를 위해 고난 받으시는 예수님, 세상 짐을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묵상하면서 대구로 향하던 그 길은 나를 더 깊은 은혜의 자리로 데려갔다.

  

   대구교도소 사무실을 지나가는데 신문을 읽고 있던 교도관들이 나를 보자 말했다.

   “한동대학교 김영길 총장님이시죠?  한국창조과학회 회장님이시기도 하고요?  신문에서 총장님 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들은 대구교도소의 밀알 신우회 회원들이었다.

  

   “저희는 한동대 학생들의 스승의 날 행사 신문 기사도 읽었습니다.  만일 총장님이 비리를 저질렀다면 교수들과 직원과 학생들이 먼저 반발했을 것입니다.”

  

   대구교도소에서 나는 기결수들이 있는 독방에 수감되었다.  혼자만의 공간에서 찬송도 부르고 성경 말씀도 묵상할 수 있었다.  아내가 보내 준 복음성가를 한 장 한 장 차례로 부르다가 김석균 작곡 · 작사의 ‘사랑의 종소리’가 마치 한동대학교를 위해 만든 찬송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랑의 종소리’를 ‘한동의 종소리’로 개사하여 매일 불렀다.

  

   나중에야 김석균 님의 아들 주헌 군이 한동대 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 출소하면 학교 채플에서 원작자와 함께 이 찬송을 부르고 싶었다.  훗날 감옥에서 내 멋대로 불렀던 이 찬송을 출감한 후 바이올린을 전공한 며느리에게 개인 교습을 받아 가며 정식으로 배웠다.

 

   그래도 항상 틀리는 부분이 있었다.  출감한 후 김석균 님과 채플에서 함께 찬양할 때 항상 틀리던 부분에서 또 틀리니까 그가 말했다.

   ‘총장님, 제가 틀리고 총장님께서 맞게 부르시는 겁니다.”

   우리는 눈물과 감격으로 ‘한동의 종소리’를 함께 불렀다.

 

   주께 두 손 모아 비나니 크신 은총 베푸사 세계로 한동의 지경을 넓혀 주시옵소서 / 오 주 우리 모든 허물을 보혈의 피로 씻기어 하나님 사랑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소서 / 서로 믿음 안에서 서로 소망 가운데 서로 사랑 안에서 손잡고 가는 길 / 오 주 사랑의 종소리가 사랑의 종소리가 우리 한동인 모두를 감싸게 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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