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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이래 가장 큰 슬픔
그들은 학교를 원망하거나 책임 전가하지 않았다
기사입력  2019/11/15 [06:26] 최종편집    크리스천비전

 

▲ 김영애 사모.     ©크리스천비전


   긴급 수습 대책을 세운 후, 교수님 두 분씩 각각 영민이네가 있는 대구와 경식이네가 있는 대전으로 출발했다. 사랑하는 제자를 잃은 교수들의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웠으랴! 학교에는 경식 군의 추모처가 마련되었다. 방학이라 집으로 갔던 학생들이 비보를 듣고 하나 둘 학교로 모여들었다. 졸지에 검은 리본을 단 경식 군의 사진 앞에 학생들은 무릎을 꿇고 앉아 눈물을 뚝뚝 흘렸다. 개교 이래 우리는 가장 큰 슬픔을 당한 것이다. 교정에는 하염없이 비가 내렸다. 그날 밤, 대구와 대전으로 떠났던 교수들이 소식을 전해왔다. “엄청난 충격으로 쓰러지셨지만 부모님들의 태도는 의연하셨어요. 그 경황 중에도 오히려 학교를 걱정했습니다.”


   부모님과 교직원들이 먼저 피지로 떠나기로 했다. 그날 공항 대합실은 처연한 분위기였다. 며칠 전에 씩씩하게 배웅해 준 친구를 이제는 천국 환송을 해 주려고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경식 군 어머니가 말했다. “경식이는 늘 선교하겠다고 말해 왔어요. 경식이를 선교지에서 불러 가심은 저희 가문에 영광입니다. 지금까지 경식이를 잘 가르치고 지도해 주신 한동대 교수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조금 후, 영민 군의 부모님이 도착했다. 입술 가장자리가 부르튼 어머님을 차마 바로 볼 수가 없었다. 영민 군 어머님이 말했다. “파도를 일으키며 재우기도 하시고, 바다 속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영민이를 살리시려면 요나처럼 살리실 수 있으시겠지요. 천국과 부활을 아들에게 가르쳐 온 제가 어찌 불신자처럼 절망하겠습니까?    


   그들은 조금도 학교를 원망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쪽 구석에서 죄인처럼 슬퍼하며 괴로워하는 김 교수 부인을 위로하고 달래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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