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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주신학대 연합 설교 페스티벌 대상 수상
미주장신대 이건민 전도사
기사입력  2019/10/04 [03:55] 최종편집    크리스천비전

 

▲ 제4회 남가주신학대학교 연합 설교 페스티벌 대상 수장자 이건민 전도사(미주장신대)     © 크리스천비전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하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에베소서 2:14-16).


   크리스천어셈블리처치(Christian Assembly Church)를 혹 아십니까? 이 교회의 원래 명칭은 ‘이탈리안’ 어셈블리 처치였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처음에는 교인 모두가 이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세대와 시대가 변하던 어느 날, 교회에 한 통의 전화가 오게 됩니다. 내영인즉 ‘이탈리아’ 사람이 아닌데 예배에 참석해도 괜찮은지 묻는 전화였다고 합니다. 이 교회는 그 전화를 계기로 교회 이름에서 ‘이탈리안’이라는 단어를 삭제했고 교회의 공식 명칭을 ‘크리스천어셈블리처치’로 변경했습니다. 교회는 현재 다양한 인종과 민족, 세대들이 모이는 공동체가 되었고 지역과 미국을 대표하는 선교적 교회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본문이 포함된 에베소 교회에서도 이방인과 유대인이 함께 모여예얘배드리는 일로 이슈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방인과 유대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한 교회의 성도가 되었지만 이방인과 유대인이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것에 대한 갈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방인이 누구인지, 유대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먼저 언급합니다. 놀랍게도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이방인과 유대인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우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이방인과 유대인인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엡 1:1),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은 자”(엡 1:3),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 받은 자”(엡 1:4),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속량 곧 죄사함을 받은 자”(엡 1:8), “그리스도 안에서 기업이 된 자”(엡 1:11),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신 자”(엡 1:12),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자”(엡 1:13)라고 말합니다. 즉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에서 ‘너희’와 ‘우리’라는 말로 구원받지 못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의 과거 삶이 어떠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인 ‘너희’는 “허물과 죄로 죽었고”(엡 2:1), “이 세상 풍조와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엡 2:2)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대인인 ‘우리’는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 2:3)였다고 말하면서 이방인과 유대인 상관없이 영적으로 죽은, 구원받지 못한 존재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이 이방인과 유대인의 과거 상태를 말한 이유는 과거에 둘 다 그리스도 밖에 있었으나, 이제 둘 다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신 ‘우리’의 구원은 자랑할 수 없는(엡 2:9)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엡 2:8), 하나님의 은혜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이방인과 유대인 상관없이 ‘우리’는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로 인해 가능해졌다고 오늘 본문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주시는 구원의 복을 동일시하는 것은 바울 서신의 여러 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고전 1:30; 골 1:27, 3:4). 사도 바울은 지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과 유대인들 사이에 적대감이 사라지고 ‘하나’가 된 것, ‘우리’가 된 것이 바로 그리스도가 주시는 구원의 복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화평(peace)이고 화평(peace)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방인과 유대인, 이 둘을 대신한 한 새 사람, ‘그리스도인’으로 ‘우리’를 만들어 화평(peace) 그리스도가 이방인과 유대인, 이 둘을 대신한 한 새 사람, ‘그리스도인’으로 ‘우리’를 만들어 화평(peace)을 이루셨고, 그 일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둘 사이를 막았던 담을 자기 육체로 허물어 버리셨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자기 육체로 담을 허무셨다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의미합니다(골 1:22; 갈 3:13; 롬 7:4).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를 ‘그리스도인’(엡 4;24)으로 만들어 서로를 화평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이방인과 유대인들간의 수평적 차원의 하나됨과 화평뿐만 아니라 수직적 차원에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도 화목(reconcile)하게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적대감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소멸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가 주시는 구원의 복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어떠 했을 지 몰라도 이제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엡 2;20)”, 바로 교회가 되었다고 사도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그렇기에 교회의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으로 ‘하나’가 되는 것,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으로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그렇다면 우리에게 있어서 화평하게 되어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방인은 누구이며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야 할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각자가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오늘 여기서 특별히 ‘다음세대EM’를 말하고 싶습니다. 한국에서는 미국인으로, 미국에서는 한국인(아시아인)으로 이방인 취급을 받는 ‘다음세대’들이 교회에서도 EM이라는 이름으로 이방인 취급을 받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10년 동안 교육부 사역을 맡아 사역하면서 너무나도 많은 ‘EM’ 아이들이 교회를 떠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실제로3천 명이 넘는 대형교회에서 ‘EM’ 아이들이 100명도 모이지 않는다는 것을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타주에 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싶으십니까?


   한 자료에 의하면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대학생이 되었을 때 교회를 떠나는, 심지어는 예수 그리스도를 더 이상 믿지 않겠다고 하는 퍼센티지가 70퍼센트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할 때 25퍼센트가 떠난다고 합니다. 95퍼센트에 해당하는 다음세대 아이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습니다. 이 95퍼센트라는 숫자가 아이들이 대학을 위해 타주에 가기 때문에 그렇다는 말씀이 그저 핑계와 변명에 불과하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왜 ‘다음세대EM’들이 교회를 떠나고 믿음을 떠날까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오늘 두 가지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무너뜨린 율법의 눈으로 그들을 정죄해왔던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헤어 스타일이 왜 그러냐? 옷이 왜 그러냐? 신발은 그게 뭐냐? 예배 왜 빠졌냐? 기도는 하고 사냐? 어른들의 경제적 사정과 직분에 따라 차별하는 태도, 어른들의 기준에 맞는 신앙생활, 질문하지 못하게 하는 억압된 분위기, 다음세대 아이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이 교회를 위해 충성만 강요하는 태도가 아이들을 떠나게 했던 건 아닐까요? 교회에서 보이는 겉모습으로 그들의 삶 전체를 판단하는 모습이 마치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판단했던 모습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두 번째는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해 ‘다음세대EM’들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죽음으로 무너뜨린 율법이 마치 복음인양, 신앙인양 가르치고 보여줬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죽음으로 보여줬던 사랑, 은혜, 용서, 긍휼, 배려가 아닌 세상의 가치인 돈과 성공이 마치 복음인양, 신앙인양 가르치고 보여줬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 결과, 다음세대EM에게 있어서 교회는 ‘우리’ 교회가 아닌 ‘너희’교회였고,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이 아닌 ‘너희’ 하나님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저는 생각해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한국 말 중에 하나가 바로 ‘우리’라는 단어라고 합니다. ‘우리’ 집, ‘우리’ 엄마 아빠, ‘우리’ 학교, ‘우리’ 가족… 이제 교회도 ‘우리’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세대와 기성세대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평을 이루고 ‘하나’되어 ‘우리’가 되고 ‘하나’ 된 다음세대와 기성세대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우리’가 될 때 ‘우리’는 하나된 ‘교회’가 될 것이고 우리는 하나된 교회를 ‘우리’ 교회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가 어떠했는지 상관없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어떻게 하셨는지 기억해보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은혜이고, 사랑이고, 북음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기성세대인 ‘우리’가 먼저 다음세대에게 그 은혜와 사랑의 복음을 전하고 보여줠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다음세대가 또 다른 ‘우리’ 다음세대를 세워가는 것을 도와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세상을 향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축복을 마음껏 주리는 성도님들 한 분 한 분 되시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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